제목: 기업 무를 자 (고엘)
본문: 룻기 4:1~22
룻기는 짧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성경 가운데 매우 중요한 책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이는 우선적으로는 룻기가 역사적으로 다윗의 계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며, 그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룻기 4장에는 특히 정말 많이 눈에 띄는 단어와 표현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업 무를 자”라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무르라”와 같은 variation으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고엘(Go’el)이란 단어의 변형들입니다. 그런데 고엘이란 단어는 ‘구속하다’, ‘구원하다’, ‘되찾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룻기 4장에는 룻의 시아버지이며, 나오미의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의 땅(소유지)을 무를 자를 찾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렇기에 룻기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부여된 땅(기업, 나라)을 되찾는 것이 주요 내용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땅을 되찾는다고 하면 통상적으로 좋게 생각할 수만 있을 수 있지만, 룻기의 맥락상 그렇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웠던 친족(기업 무를 자)은 자신에게 손해가 있을까 해서 그의 기업을 무르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죽은 룻의 남편(말론)의 이름으로 기업을 세워야했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거기에는 많은 금전적 손해가 따를 수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5절에서 보아스는 “죽은 자의 아내”, “죽은 자의 기업”이란 말을 씁니다. 남자가 죽었다는 것은 그 가족이 모두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삶의 아무런 희망과 소망이 없는 가족인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시에 그들에게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큰 손해를 보면서까지 죽은 자의 기업(땅)을 사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보아스는 서슴없이 자신이 기꺼이 짊어지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보아스의 결정이 그저 룻이 그보다 한참 젊은 여성이었거나(3:10), 보아스가 룻에게 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룻기는 “인애”와 “은혜”에 집중을 합니다. 룻기는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 시어머니를 향한 며느리의 사랑과 헌신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이때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편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친족과 이방인을 향한 보아스의 은혜와 자비를 이야기합니다. 룻기에는 그런 인애와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 처음부터 끝까지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보아스는 나오미까지 모셔야했습니다.)
이 룻기의 스토리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향한 자기 희생과 긍휼의 마음으로 기꺼지 손해를 보면서 죽은 자의 기업을 무르고 있는 보아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다윗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예수님을 통해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극단적인 자기 희생(성육신과 십자가)로 인해 죽은 우리들의 영혼을 다시 되찾으셨습니다. (고엘)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계속해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기 희생을 통해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기꺼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하나님의 기업을 되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룻기의 이야기가 더 빛을 바라는 것은, 룻기의 역사적 배경이 바로 사사기 시대라는 점입니다. 모두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며, 아무런 인애와 긍휼, 자기 희생을 찾아볼 수 없었던 (심지어는 사사들조차도) 그런 시대 가운데,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인애와 긍휼’(헤세드)의 사람들을 통해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핵가족을 넘어 일인 가족화되고, 과학 기술을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사람을 향한 인정과 사랑이 사라져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점점 메말라가는 그런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시대 가운데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의 사랑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음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것인가? 하나님의 기업을 어떻게 되찾아올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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