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본문: 에스더 4:1~17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14절)
에스더가 왕후로 세워진지 4~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때 하만의 계략으로 인해 유다인(이스라엘인) 대학살 명령이 왕의 조서로 페르시아 온 땅에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에 뉴질랜드에서 갑자기 한인들을 모두 대학살하라는 뉴스가 나왔다고 생각을 해보면, 정말 너무나 두려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유다인들에게 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유다인들 모두가 완전히 진멸할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앉히려고 노력했던 것이, 다만 에스더의 행복만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상황을 이야기하자, 에스더는 자신이 뭔가 나섰다가는 자신의 목숨 마저도 위험해 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르드개의 한마디가 에스더와 유다민족 모두의 운명을 바꾸어놓습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은 마치 하나님의 음성과 같이 에스더의 마음에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지난 4~5년의 시간이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와스디가 폐위되고, 왕후 책봉이 새로 열리고, 유다인임을 숨긴체 왕후 책봉에 지원했던 시간들, 왕후로 책봉되기까지의 12달의 준비 기간들, 왕 앞에 두려움으로 섰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모두 바로 이때를 위함이었음을… 에스더는 드디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자 에스더의 입에서는 놀라운 믿음과 결단의 고백이 나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6절)
죽으면 죽으리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이 바로 지금 이때를 위함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잘해서 왕후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셔서 왕후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왕후가 된 이유는 진멸당할 위기에 처한 유다인들을 모두 구원할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왕 앞에 나아가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에게도 허락하셨던 지난 세월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뉴질랜드에 이민을 오게 되고, 홈스테이 생활, 처음 갔던 교회 수련회, 청소년부 생활, 청년부 생활,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았던 시간들,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시절들, 부교역자로 교회를 섬겼던 시간들, 그리고 결국 기쁨의교회에 오기까지…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을 위함이 아닌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난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고 계신 지금이란 시간도 있습니다. 지금이란 시간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에스더와 같은 사명감으로 오늘이라는 현실 가운데 임하는 제가 되기를… 그리고 우리 기쁨의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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